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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학

색채 표현의 이론 노랑, 빨강, 파랑

by bloggersofia 2024. 1. 4.

노랑

 노랑은 모든 색상 가운데서 가장 많은 빛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회색, 검정색 혹은 보라를 혼합하면 그 순간 노란색의  특성은 상실된다. 

  노란색은 말하자면 흰색의 밀도를 색료적으로 보다 높인 것이다. 노란색  광선이 물질적인 밀도를 증가함에 따라 다시 말하자면 그 불투명성을 증가함에 따라 더욱 더 주황색, 보라색, 주홍색에 동화하게 된다. 우리들이 말하는 빨간색은 이 노란색의 정지점이며 빨강은 조금도 노란색기를 띠지 않는다. 노랑색에서 빨강에 이르는 색대의 중간에 주황이 있으며 그곳에는 빛과 색료가 가장 강렬하게 또 가장 집중적으로 침투하고 있다. 황금빛 노랑은 물질이 광선의 힘에 의하여 최고도로 순화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약간의 빛을 발할 뿐 투명성이 결핍된 것이지만, 그러나 하등의 중량감도 느끼게 하지 않은 채, 순수하게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황금색은 일찍이 빈번하게 회화에 사용되었다. 그것은 눈부신 물체를 의미하였으며 초기의 거장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비잔틴 모자익의 황금색 돔과 배경은, 천구그 초현실적 현상, 태양이 찬연한 왕국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성인들의 황금빛 후광은 극들의 거룩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같은 거룩한 상태는 빛으로 둘러 쌓임으로써 표현할 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같은 거룩한 빛은 황금색 이외의 것으로서는 나타낼 수 가 없었던 것이다. 

 

 통상 "빛을 밝혀 본다"는 말은 지금가지 감추어졌던 진실을 밝혀 실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을 두고 '밝다'라고 할 경우, 그것은 그의 지능이 뛰어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같이 가장 밝고, 빛부신 색인 노랑은 이해와 지식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류네봘드는 노란색의 영광에 쌓여 승천하는 그리스도를 그리는 것을 생각해 내었다. 노랑은 또한 알트도로파의 <천사와 함께 있는 마돈나와 그리스도>에 있어서 천상계의 빛이로서 사용되고 있다. 

 진실이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노랑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혼잡물이 섞인 진실은 가치없는 진실이며, 곧 거짓인 것이다. 희석된 노랑의 표현은 질투, 배신, 기만, 의혹, 불신 부조리인 것이다. 지오또의 <체포된 그리스도> 및 홀베인의 ,<최후의 만찬>에 있어서의 유다는 흐릿한 노란색으로 그려져 있다. 엘 그레코의 <옷을 벗기는 그리스도>속에 그려져 있는 부인의 회황색(gray-yellow) 겉옷은 불신감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특히 효과적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노란색이 어두운 색조와 대비되었을 경우, 그것은 밝고 활기찬 느낌을 나타낸다. 

 

빨강 

 12색환 상의 빨강은 노란색기를 띤 것도 아니고 파란색기를 띤 것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억제할 수 없을 정도 광휘를 가지며, 쉽사리 그 강휘를 상실하게 할 수는 없지만, 성격이 서로 다른색과 인접함으로써 극단적인 유연성을 나타낸다. 이것은 매우 감수성이 예민하여 노란색기를 띤 색이나 파란색기를 띤 색으로 곧잘 변한다. 따라서 노란색기를 띤 빨간색이나 파란색기를 띤 빨간색이나 간에 다양한 색조변화를 전개할 수 있는 커다란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주홍색은 밀도가 높고, 불투명하며 마치 열이 내부에 차 있는 듯한 광휘를 보인다. 빨강의 열기는 주홍색에 있어서 화염과 같이 격력하게 강화된다. 이것은, 상징적으로는 활기에 넘치는 대지에 비유할 수가 있다. 주홍색의 빛은 식물의 성장과 그 유기적인 작용을 촉진한다. 나아가 다른 색과 올바른 비교가 행해질 경우, 주홍색은 열광적 호전적인 정열을 나타낸다. 

 빨간색은 화성을 연상하게 하며, 전쟁과 악마의 불타는 듯한 세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가 있겠다. 빨간색은 그 옛날의 싸움터의 병사들에 의해 적진을 점령한 표시로서 착용된 바가 있다. 이것은 또한 혁명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정열적인 육체의 사랑은 주홍색 속에서 불타고 파랑을 띤 빨강과, 보라는 정신적인 사랑을 암시하고 있다. 

샤롱톤은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그리스도>의 겉옷을 붉은색으로 그렸으며, 그류네봘드에 의해 그려진 이젠하임의 재단장식의 마돈나와, 스타파크의 마돈나의 의상에 붉은색이 사용된 의도가 짐작된다. 

 

 자주색은 추기경의 의상 색이며, 세속적인 힘과 영적인 힘은 자주색에서 결합되고 있다. 

 어두운 분홍색을 배경으로 하는 주홍은 정적이고, 열을 식히는 작용을 한다. 청록색을 바탕으로 하는 주홍색은 마치 타오르는 화염과도 같다. 짙은 라일락색을 바탕으로 하는 주홍색은 다시 한 번 그 광휘를 상실하고 라일락색에 거센 저항을 일으킨다. 황록색을 배경으로 하는 주홍색은 염치없고 분별없는 침입자이며 떠들썩하고 평범하다. 주황색을 바탕으로 하는 주홍색은 그을며, 어둡고 활기가 없다. 주황색을 짙게하며 어두운 갈색으로 할 때 붉은 화염이 불타오르고, 건조된 열을 발한다. 빨강이 최고로 범하기 어려운 악마적 정열을 발하는 것은 검정과 대비하는 경우 뿐이다. 빨강의 이와같은 효과는 그 표현가능성의 일단을 암시한데 불과하다. 노랑과는 달리, 빨강은 다채로운 색조변화를 일으킨다. 그 까닭은 빨강이 스스로의 특징인 자기파괴 없이 한난, 예리성과 둔중성, 명과 암 사이에서 폭넓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검정을 배경으로 한 악마적이고 불길한 주황으로부터 감미로운 천사와 같은 분홍에 이르기까지 천국과 지옥의 중간 계단을 모두 표현할 수가 있다. 

 단, 가볍고 투명한 공기 체상과 같은 것은 빨강의 표현범주 속에 넣기 어렵다. 이곳에는 파랑이 최고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랑

 순수한 파랑은 노랑이나 빨강의 흔적이 전혀 없는 색이다. 물질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빨강이 항상 능동적인 것이 반해, 파랑은 항상 수동적이다. 비물질적인 정신면에서 본다면, 파랑이 활동적인데 대하여 빨강은 수동적인 것이다. 파랑은 항상 차갑고 빨강은 항상 따뜻하다. 또 파랑은 수축적이고 내향적이다. 빨강이 피를 연상시키는데 대해 파랑은 신경계통을 연상케 한다. 파랑은 모든 발아와 성장이 암흑과 고요 속에 숨겨져 있는 겨울의 자연력과도 같은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 파랑은 항상 그림자와 같으며, 그것이 절정에 달하면 암흑을 낳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포착하기 어려운 무와 같은 존재이면서도 투명한 대기 마냥 존재하는 것이다. 파랑은 대기 속에 있어서 가장 밝은 연파랑으로부터 가장 어두은 밤하늘의 청혹색에 이르는 다양한 색조로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파랑은 그 신앙적인 표정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을 뒤흔들며,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정신적 피안으로 손짓하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신앙을 의미하고, 중국인에게는 불멸을 상징하는 것이다. 파랑이 흐리게 되면, 미신, 공포, 비탄과 멸망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파랑은 항상 초현실적 세계를 지향하는 경향에서 이탈하지는 않는다. 노랑바탕 위에 어두운 색으로서 파랑을 배색했을 때 그 효과는 매우 어두우며 광휘는 전혀 없다. 밝은 지성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신앙은 둔해지고 희비하게 보인다.

 

파랑을 노랑과 같은 명도로 밝게 하면, 그것은 냉광을 발하며 그 투명감은 노랑을 농밀하게 또한 물질적인 색상에로 강하시킨다. 검정을 바탕으로 하는 파랑은 밝고 순수한 강도로서 빛나고 있다. 검은 무지가 지배하게 되면 청순한 신앙을 나타내는 파랑은 아득히 먼 곳에서 빛을 발한다. 라일락색을 바탕으로 파랑을 배색하면, 그것은 후퇴, 공허, 무기력을 나타낸다. 이 라일락색은 빨강으로부터의 모든 의의를 앗아가는데, 그것은 라일락색이 '실천적신앙'이라고 하는 파랑을 능가하는 강한 물질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라일락색을 어둡게 하면, 파랑은 그 본래의 빛을 되찾는다.  어두운 갈색을 바탕으로 할 때, 파랑은 강하고 활기에 찬 진동을 낳게 되며, 동시에 갈색도 생생한 색으로 되살아 난다. 생명력을 잃고 있던 갈색은 파랑의 힘에 의하여 소생하는 것이다. 주홍을 배경으로 하는 파랑은 여전히 그 어두운 색조를 지나기는 하나 광휘를 발산하게 되며, 그 비현실성을 주장하고 유지한다. 고요한 초록을 바탕으로 한 파랑은 현저하게 빨강에 접근되고 있다. 파랑은 이 빨강의 <도피>에 의하여 다른 색을 마비시키는 초록의 채도로부터 벗어나 활기찬 생명을 되찾게 된다. 파랑의 후퇴적인 성질, 다소곳함, 경건한 신앙은 흔히, 수태고지의 그림에 사용 되고 있다. 태네에 귀를 기울이는 성녀 마리아는 파란색의 의상을 걸치고 있다. 그 좋은 예로서는 로지에 봔델 베이덴이 그린 구세주의 현현의 재단인 것이다. 또 그류네 발드가 그린 <조소당하는 그리스도>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겉옷은 강한 밝은 파랑이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올바른 신앙을 확신하고, 완전한 수동적 태도로서 무지한 자들로부터의 모욕에 참고 견디는 것이다. 이젠하임 제단의 <유혹>속에 그려진 성 안토니오도 이것과 거의 같은 파란색 옷을 몸에 걸치고 있다.

 

 

 

 요하네스 이텐의 색채의 예술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