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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학

색채 분석의 세계적 권위자 장 필립 랑크로

by bloggersofia 2024. 1. 15.

색채 디자이너 장 필립 랑크로

 색채를 주제로 작업하거나 색채 이론을 가진 전문가는 크게 세 부류가 존재하는데 화학자, 물리학자, 예술가이다. 장 필립 랑크로는 물론 예술가 집단에 속하지만 그의 색 연구 방법은 상당히 과학적이면서 자연 과학의 범주에 맞을 것이다. 랑크로는 화가의 직감과 지리학자가 가진 분석력을 겸비하여 예술가의 감정을 과학적인 분석으로 미묘하게 제어하고 있다.  즉 그는 색채 디자이너로서,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분야의 예술가이다. 전문 분야의 세분화가 점차 이루어지면서 여러 업종에 속하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게 되는 현대의 공업화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예술가가 요구 되고 있다. 멈포드가 말했듯이, 공업 사회는 회색빛 연기와 먼지 투성이인 암흑의 세계에서 태어났다. 옷과 모자도 검은 마치 굴뚝과 같은 출발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도시를 "매연의 도시"라고 부를 정도였다. 왜 그토록 문제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어둠에 익숙해진 유산 계급에게 인상파 화가들이 빛과 색채를 제공함으로써 대부분의 개방 공간을 관능적으로 보이도록 한 결과 때문이 아닐까. 인상파에서 포비즘, 데 스틸, 바우하우스를 경유하여 페르난 레제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에 색채를 되돌려준 이는 당연히 화가들이었다. 특히 데 스틸의 예술가들 중에서도 몬드리안은 여러 가지 색채를 이용하여 건축에 활력을 주고자 시도했다. 그리고 색채가 맡는 역할을 가르치기 위한 시스템을 바우하우스의 이텐과 알베르가 마련하였다. 

 

유년기의 랑크로와와 색채를 분석하는 방법

 장 필립 랑크로는 자신이 지은 [The Colors of France] 속표지에 발티우스의 그림을 복재하여 넣고 있는데, 왜 발티우스인가? 색채가 반드시 이 화가의 특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랑크로에게 그 점을 물어 본 결과, 전혀 예기치 않은 대답을 얻게 되었다. 

 유년기의 랑크로는 회화 등과는 거의 인연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는데 집에는 미술에 관한 책도 없었고 겨우 조각과 건축 관계의 책이 몇 권 있었다고 한다. 또한 어린 그가 보았던 회화 책은 흑백인쇄 뿐이었다 15세인 그가 아직 릴의 미술학교 학생이었을 즈음, 거의 신화적인 평판을 얻고 있던 화가와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발티우스였다. 그리고 21세때, 파리 국립 장식 미술 대학(현재 랑크로는이 대학의 교수이다)을 졸업하고 일본 정부가 제공한 장학금으로 일본에 유학 중이던 어느 날, 프랑스 대사관으로부터 일본을 방문하는 프랑스인 화가와 동생하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런데 그 화가가 우연히도 발티우스였고 그 이래로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말티우스가 관리 감독을 맡고 있던 빌라 메디치를 랑크로가 방문하였을 당시에는 그들의 우정이 더욱 깊어졌던 것이다. 

랑크로는 폴 끄레의 복제 작품을 본 순간부터 색채의 의미에 대하여 자각하게 되었지만, 그가 아직 일본 채재 중의 일이었다. 모네, 슬러, 소니아 듀로네 등이 랑크로의 멋과 발상이 태어난 영감적인 근원이었고, 그 중에서도 색채와 리듬을 자유롭게 사용한 소니아 듀로네에게서 강항 영향을 받았다. 

랑크로는 "색채에 대한 내 감각의 뿌리는 복잡 미묘한 회화의 세계이다."라고 서두를 꺼낸 뒤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자신과 자연 사이에는 언제나 회화가 존재하였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모습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단순함을 가지기 때문에 화가들은 독자적인 표현 수단으로 나타내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이 접근 방법 자연에 존재하는 색을 화가들이 표현하는 일은 랑크로의 독창성을 말하는데, 그의 작업을 추진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랑크로의 친구들 중 몇 사람은 같은 색채 디자이너로서 예술과 과학을 결부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랑크로는 자신을 물리학자보다는 건축과 공업 제품 등의 일상 세계에 확고하게 발을 붙인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환경을 분석하는 그의 방법은 자연주의자의 그것이다. 그의 프랑스 건축을 분류하는 방법은 자연주의자의 그것이다. 그의 프랑스 건축을 분류하는 밥법은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질서와 과학적 정확함을 가지고 있다. 그는 바닥이나 벽과 지붕 등의 재료나 목공 제품의 재질을 관찰하고 그 지역에 나타나는 독특한 색채 경향을 찾아낸다. 이 과학적인 색의 관찰은 생산업자에 대하여 "색을 바르는 목적은 보호뿐 아니라, 색채 자체에 본래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는 점을 증명하여 왔다. 이리하여 장 필립 랑크로는 지역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의 깊게 고른 건재용의 일련의 색채를 생산업자에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각 지역의 풍경에 대해 명백한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건축 재료의 균일화는 모든 건축물을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버릴 것이고 색채조차도 동일하게 되어버릴 것이라고 그는 지적하고 있다. 주택만 하더라도 백색은 모든 지역에 만연하고, 그 지방 고유의 색을 서서히 발견할 수 없게 된다. 

 랑크로는 각지의 건축에 대해 그 지방의 독특한 색채에 관하여 철저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를 1977년 퐁피두 세너의 산업 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색채의 지리학"이라 이름 붙인 주목할 만한 전시회에서 나타내 각광을 받았다. 

 색채가 화가들의 손에 의하여 비로소 높은 위치로 끌어 올려진 것이라고 한다면 20세기 들어서 사진이나 영화, TV 혹은 잡지, 의복이나 자동차 등에 의하여 지상으로 끌어내려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색이 현대 건축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도 극히 신중하고, 졸렬한 방법에 의해서였다. 어느 때는 위장을 시키기 위해서이고, 어느 때는 보는 사람의 주위를 환기하기 위해서이다. 건축에서의 색채는 그 자체의 수준 향상이나 생활화라는 작용을 갖는다. 어떠한 건축일지라도 색은 건물의 디자인을 강조한다든지, 색 자체가 강한 요소가 되는 일이 간능하다. 기능적이었다든지 자기 표현의 수단도 된다. 심리학적 견지에서 사람에 따라서는 색을 하나의 기술로서 갖고자 하기도 하고 또는 치료의 수단ㄷ이고 혹은 파멸을 의미한다. 랑크로는 색채가 가진 어떠한 "속임수적" 과학성에 대하여 매우 신중하다. 그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랫동안 거론되지 않았던 색의 실용이나 그 교육법에 대하여 간결하고 질서가 있는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랑크로에게 있어서 색은 건축적으로도 사용하여야 할 도구이고, 공간을 정의하기 위한 수단도 된다. 그의 논리는 주택이나 빌딩, 쇼핑센터, 혹은 교통기관(르노 차나 브리지스톤 자전거 등)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색채디자이너로서 그의 작업은 회화라는 창조적인 요소를 살리면서도, 건축으로부터 도시 계획에 이르기까지 실로 여러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잊지않고 나타나는 것이 있다. 즉, 상상을 작용시킬 것. 최소한의 지출로 최대의 성과를 올릴 것. 장식 과다를 우려한 나머지 기능주의의 올가미에는 걸려들지 않을 것. 그리고 리듬이나 볼륨과 색이나 소재가 언제나 조화되어 있을 것 등이아. 랑크로의 방법이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는 것은 처음 실현된 것은 1970넌 동경의 색채 연구소였고, 그는 일본의 도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랑크로의 작업이 윤곽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몇 개의 유명한 전시회와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다. 이 때의 전문 연구서와 그가 전문가로 그의 방법과 성취욕을 색채디자인 역사에 기록한 최초의 출한이었다. 

 

랑크로의 색채디자인 중 발췌